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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부산에서 런던까지 / 정은주 글, 박해랑 그림／키다리

어린이들은 탈것을 좋아한다. 자신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까지 멀리 데려다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탈것에 열광한다. 그중에서도 기차는 끝이 없는 것처럼 길고, 움직임이 웅장하면서도 어린이 승객에게 친숙한 교통수단이어서 기차가 나오는 이야기는 늘 인기가 높다.

논픽션 그림책 ‘기차 타고 부산에서 런던까지’의 첫 장면은 아침 6시 10분, 어느 가족의 거실이다. 이 집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고 책상 위에 지구본과 기차 여행 책자가 놓여 있다. 장식장에는 비행기와 자동차 모형도 있지만 기차가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려주듯이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장난감 나무기차와 철길이다.

주인공의 가족은 부산역을 출발해 할머니의 칠순을 기념하는 기나긴 기차 여행을 시작한다. 첫 열차인 KTX의 열차 번호가 815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울역을 거쳐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비행기의 힘을 빌려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 비무장지대 철책 위로 비행기가 나는 장면은 지금은 꿈이지만 곧 현실이 될 것처럼 생생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는 런던까지 오직 기차 여행이다.

박해랑 작가는 기차 여행을 하는 동안 만나는 세계 각국의 여러 풍경을 아주 작은 부분까지 치밀하게 재현했다.

사진과 동영상이 흔한 시대에 이런 실사에 가까운 이미지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책을 보면서 얻은 신기한 깨달음은 그림이어서 더욱 사실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열차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객차 안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인물들의 모습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섬세함이 느껴지는데, 붉은 광장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쪽이 여성이고 포즈를 취하는 쪽이 남성이라거나 그랑플라스 광장의 다정한 커플이 은발의 노년이라거나 또, 탈리스를 타고 있는 승객 중에 왼손잡이 부부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곳곳에 눈에 띄는 부분이 나타난다.

여행 그림책의 큰 역할 중 하나는 대리만족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책은 충분히 그 몫을 다했다. 책을 덮어도 올리브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노을이 생각난다. 현실보다 더 좋은 여행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관광지의 인구밀도가 낮아서일 것이다. 그런 부분은 재현되지 않아서 더 좋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책이다. 64쪽, 1만35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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